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 9일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 센터에서 iPhone을 세상에 처음 선보일 때, 그의 손에 들린 아이폰에는 앱스토어가 없었다. 스티브잡스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개하던 그의 아이폰에는 전화, 문자, 이메일, 음악(아이팟), 달력, 웹브라우저, 주소록 등 (운영체제의 설정을 빼고) 14개의 앱이 있었다. 구글의 지도를 빼고는 모두 애플의 프로그램이었고, 그 14가지가 세상에 존재하는 아이폰 앱의 전부였다. 애플은 초기 개인용 컴퓨터 시절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에 비하여 다른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개방적이지 않은 편이었는데, 아이폰도 처음엔 그런 분위기로 출발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그날 우선 강조한 것은 터치기반의 인터페이스였다. 이전의 스마트폰들은 화면을 터치할 때 스타일러스펜을 이용하도록 하였었다. 하지만 아이폰은 사람에게 가장 친숙하고 잃어버릴 수 없는 도구인 손가락을 이용하여 훨씬 편리한 사용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하드웨어 키보드를 없애고 필요할 때마다 화면에 올라오는 소프트웨어 키보드를 설치하여 기기의 부피를 줄이고 화면을 실질적으로 넓게 쓰는 길을 열었다.
구글의 지도조차 발표 몇 주 전에야 장착하기로 했다고 한다. 잡스는 다른 회사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이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폰의 혁신적인 멀티터치 인터페이스의 장점을 보이는데 지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실제 무대 위에서 두 손가락으로 지도를 확대해 보는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장면을 보여준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앱스토어가 아니라 음악 때문이었다. 이동전화기에 설치된 음악 플레이어가 좋아지면 아이팟을 사람들이 덜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아이폰 개발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애플은 2005년 9월에 아이튠즈를 장착한 모토롤라의 ROKR 전화기를 이미 발표했었다. 하지만 그 기기는 100곡만 담을 수 있었고, 온라인으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없는 등의 문제로 실패작이 되고 만다. 애플은 그 이후 자체 휴대전화를 만드는 쪽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애플이 2007년 6월 29일에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할 때에도 구글의 유튜브 앱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개발자들이 아이폰용 응용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브라우저에서 볼 수 있는 모바일 웹사이트를 만들라고 했다. 회사 안팎에서 외부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게 해주자고 했지만, 잡스는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출시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폰의 각종 제약을 풀 수 있는 ‘탈옥하는 법 (How to escape jail)’이라는 문서가 등장하였고, 아이폰에 새로운 벨소리를 넣었다고 인증 비디오를 올린 사람이 나타났다. 이어 게임을 아이폰에 설치하였다는 사람도 나타났고, 10월에는 아예 탈옥용 소프트웨어가 공개되었다. 거기에는 앱을 설치할 수 있는 Installer.app이라는 앱스토어와 유사한 프로그램까지 등장하였다. 탈옥(Jailbreaking)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갔다.
결국 잡스는 마음을 돌렸고, 2008년 3월에 개발자들이 아이폰용 앱을 만들 수 있는 SDK(Software Development Kit)을 발표한다. 아이폰의 운영체제를 움직여 기기를 동작시키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길을 공식적으로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이전의 스마트폰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블랙베리나 윈도우 모바일 등 기존의 스마트폰들도 이미 외부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었다.
애플은 한가지를 더 선보였는데, 그것이 앱스토어이다. 앱스토어는 무엇보다도 개발자들이 애플 직원을 만날 필요도 없이 인터넷으로 앱을 올리기만 하면 되도록 하였다. 또한 올라온 앱들을 전시하여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진열대 역할을 하였고, 터치 한번으로 설치되는 편리한 기능을 갖추어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끝으로, 유료 앱을 소비자들이 터치 한번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하였고, 7대3으로 수익을 나누어 가만히 있어도 개발자들의 계좌에 수익금을 입금해주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개발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휴대폰에는 다양한 앱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성, 문자에 만족했고,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정도였다. 피처폰(비스마트폰)에도 뉴스, 게임 등 어플리케이션이 있었지만, 소프트웨어가 다양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조잡했다. 일부 젊은 층을 빼고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폰 이전에도 블랙베리,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등이 개발한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제3자가 개발한 앱은 많지 않았다. 그저 연락처, 달력, 메모장, 사진 등 ‘이동전화라면 응당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쓰는 정도였다.
아이폰의 앱스토어가 출현하자 세상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2008년 3월 6일에 앱스토어를 처음 발표할 때, 앱스토어에는 500개의 앱이 있었다. 불과 5년이 흐른 2013년 10월 애플은 앱스토어에 (아이패드앱을 포함하여) 100만종 이상의 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현재 안드로이드에도 100만종 이상의 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성을 사용자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 2013년 10월 애플은 앱스토어 출시 이후 누적으로 600억번의 다운로드를 돌파하였다고 발표했다.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엄청난 숫자이다. 기기 하나당으로 따지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한 개당 83개의 앱이 설치되어있다고 한다. 안드로이드 기기는 평균 53개라고 한다.[i]
어떻게 이렇게 엄청나게 다양한 앱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외부의 개발자들이 만든 앱을 자유롭게 앱스토어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앱을 혼자 개발하거나, 소수의 제휴 회사들에게만 허락하는 방식으로는 100만개의 서로 다른 앱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이었을 것이다.
애플이 폐쇄적인 사업모델을 유지하였다면, 아마도 애플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거나 잡스가 좋아하는 회사들만 아이폰에 앱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구글 외에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페이스북, 아마존닷컴, 어쩌면 기업용으로 세일즈포스닷컴, 오라클, SAP 등이 그런 회사였을 것이다. 몇 개, 몇 십 개 정도의 회사들이 여기에 들어가려고 애플에게 엄청난 영업을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사업모델이다.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전화가 그런 모습이었다. 좁은 공간에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넣으려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에게 통신사의 관련 담당자들은 엄청난 로비 대상이었다. 소프트웨어뿐이 아니라 모든 산업이 그랬다. 유통사는 입점하려는 제조업체를 선별했고, TV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하지만 앱스토어를 만들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폰에 앱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 참여하는 개발자의 수는 폭증했다. 2013년 11월 기준으로 약 27만의 publisher(앱을 등록한 사람/회사)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참여했기에 그들이 평균 몇 개 정도의 앱을 만들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100만종의 앱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는 수익모델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초 블로그, 카페 붐이 일었었다. 지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하지만, 초기의 열풍에 비해 열심히 운영되는 블로그와 카페는 많이 줄어들었다. 주요한 원인 하나는 수익모델의 부재에 있다. 초기 블로거들은 광고에 많은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광고로 돈을 버는 것이 어렵자,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매력을 찾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대조적으로 스마트폰 앱스토어는 분명한 수익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전문적으로 모바일 앱을 만드는 플레이어들이 넘치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 있었다.
앱스토의 등장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은 예전에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앱 생태계 자체를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과 구분되는 새로운 산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가 다양한 상품을 공급하는 생태계를 필자는 매스니치(Mass Niche)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