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혁신은 피할 수 없습니다. 흔히 천재적 창의성의 결과로 여겨지지만, 일정 정도까지는 훈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고정 관념,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고방식입니다. 그 중 매우 중요한 것이 시장을 보는 관점입니다.
“보험은 파는 것이다.”
며칠전 보험업계 전현직 임원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연히 보험시장 얘기가 나왔는데, 그 중의 하나가 최근 시도되고 있는 온라인 보험 얘기였다. 온라인보험은 이미 있어 왔지만, 몇몇 보험회사들이 그간의 중심이었던 아웃바운드(개별고객을 먼저 접촉하는) 텔레마케팅이 아닌 인바운드(고객을 기다리는) 온라인 보험 사업모델을 시작하고 있는데, 다들 부정적이었다. 필자만 잘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분들의 주장은 결국 “보험은 파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Insurance is sold, not bought).”라는 보험업계의 오래된 격언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보험을 자발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은 없고, 설계사가 강하게 권유해야 팔린다는 뜻이다. 풀(pull)이 아니라 푸시(push) 영업으로만 판매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새로운 상품에 많은 고객이 부정적일 때
2000년도에 국내 최초의 온라인 자동차보험 사업모델을 제안하고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으로 아직 온라인보험의 성공사례는 드물었고, 이제 막 시도들이 나오던 때였다. 당시에도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보험은 사는 게 아니라 파는 것”이라는 말은 그때도 들었다.
조사결과도 그런 비관론을 증명하는 듯 하였다. 가격이 더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보험을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주된 이유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보험을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보험영업을 하는 친구나 친척에게 보험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쉽게 알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혁신가적인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평균주의를 버려라
혁신가라면 “얼마나 많은 고객이 그런가?”를 물어야 한다. 위의 경우 가격이 더 저렴해도 온라인보험으로 가입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절반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 가장 많긴 했지만, 긍정적이거나 유보적인 사람도 나머지 절반이나 되었다. 컵에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절반이나 남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시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관점을 수용한 최고경영자의 결단으로 신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어떤 새로운 상품이건 초기에 도입하려는 사람은 시장의 소수파다. 다수의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한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좋아도, 시장 전체가 이를 반길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환영하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다. 혁신의 목표는, 적어도 초기에는, 우리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고객을 만드는 것이지, 시장 전체를 우리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장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시장 세분화, 세그먼트를 업으로 삼는 마케터들마저 얘기하다보면 시장을 하나로 생각하는 경우를 본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고객들간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혁신가는 평균주의 사고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새 모델을 좋아할 고객들이 일부라도 존재할까?”를 묻는다. 평균적인 고객이 아니라 우리의 모델을 좋아할 고객에게 사업모델을 최적화해야 한다.
다시 처음의 대화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필자의 온라인 보험에 대한 생각은 2000년, 2002년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2001년 처음 온라인보험이 시작된 이후 13년만에 37% 점유율까지 올라왔다. 애초의 제안과 달리 2000년 이후의 온라인 보험은 아웃바운드 전화 영업의 비중이 더 컸지만, 인바운드도 상당한 비중을 보여주어 왔다. 더 저렴한 가격이라는 분명한 가치를 주는 한, 온라인보험을 선호할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실제로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지는 그런 고객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가치를 주고 얼마나 설득을 잘 하느냐에 달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