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글을 쓰나?
2017년 9월 12일 JP모건의 대표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이 fraud(사기)라고 비판하였다.
“It’s just not a real thing, eventually it will be closed.”
중국의 연이은 규제 (ICO 금지, 거래소 규제) 소식으로 이미 추위를 느끼던 시장에 그의 발언은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폭락을 하였다. 9월12일에 1500억 달러를 넘던 가상화폐 전체의 시가총액은 9월 15일 1000억 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이후에 다시 오르고는 있지만, 며칠 사이에 한두개의 가상화폐도 아니고 전체 가치가 3분의 1 이상 떨어진다는 것은, 가상화폐 시장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잘 보여준다.
가상화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이먼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그들도 비트코인의 가치나 가격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얘기를 못하고 있다.
맞건 틀리건 기업의 가치나 부동산의 가치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라는. 투자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어떤 회사의 주가가 싸다, 비싸다 판단하고 그 주식을 사거나 판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유는 없이 답만 말하는 ‘예언’이나, “추세선을 분석해보니 모멘텀이 계속된다”는 식의 논리적 근거가 없는 주장만 있다. 가이드라인을 삼을 합리적 기준이 없다.
Disclaimer를 겸해서 말하자면, 나도 일부 가상화폐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기준을 삼을 만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가치평가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순서로 쓸 계획이다.
- 가상화폐의 내재적 가치 (이 글)
- 비트코인이 사기라면 달러도 사기다
- 실물로 바꿔 주지 않는 화폐의 내재적 가치는 없나?
- 기존 화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 가상화폐는 지금의 화폐에 비해 경쟁력이 있나?
- 비트코인의 적정 가격은 얼마인가?
- 비트코인의 적정 가격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나?
- 비트코인의 예상 가격은?
- 가상화폐의 리스크
- 가상화폐의 최대 리스크는?
- 가상화폐의 전략
- 가상화폐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
- 가상화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사실과 논리에 근거하지만, 결론에 해당하는 것들은, 즉 위 목차의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필자의 생각이다. 나 자신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투자 조언이 아님도 분명히 밝힌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평가 방법과 가격 수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겠지만, 가상화폐를 사거나 팔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하기를 바란다.
비트코인이 사기라면 달러도 사기다
삼성전자 주식도 오를 것이냐 떨어질 것이냐, 너무 높다 너무 낮다 논의가 많지만, 최소한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가 0이 아니라는 데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적정한 가격을 따지기 전에 가치가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컴퓨터로 생성한 코드에 불과한데, 그것으로 음식이나 전자제품을 산다고?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대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제기해 왔다.
“나는 비트코인을 무엇이 보증하는지 모르겠다. 비트코인의 내재적 가치를 도출하려면 정말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 나는 못 하겠더라.”
(전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
“내가 그들에게 왜 비트코인이 믿을 만한 가치의 저장소인지 물어보면 그들은 항상 그게 얼마나 훌륭한 교환수단인지를 설명한다. 내가 그 주장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전부 동의 하지도 않지만), 내 문제를 풀어주지 못한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해석하면 이렇다. “화폐는 교환수단의 기능과 가치저장의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화 같은 실물 화폐이거나 실물로 바꾸어 준다는 정부의 보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폐의 역사를 보면, 그 말이 정확한지는 의문스럽다.
화폐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왔다.
1. 실물 화폐 (예: 금화)
2. 태환 화폐 (예: 금으로 바꿔주는 지폐)
3. 불태환 화폐 (예: 금으로 바꿔주지 않는 화폐)
물물교환을 하던 고대인들은 여러 차례 교환하는 수고를 덜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원하는 금, 옷감 등을 화폐처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공식화, 표준화한 것이 실물화폐라고 할 수 있다.
화폐 위에 새겨진 1달러는 1달러라는 화폐 단위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일정한 금의 양을 의미하였다. 금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미국 정부가 사라지거나 그 화폐를 발행한 연방은행이 사라지더라도 금은 남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치의 저장소로서 금화를 믿었다.
하지만 많은 금액을 들고 다니려면 무거웠다. 그래서 가벼운 지폐가 나왔다. 지폐는 그 자체로는 금처럼 가치가 없지만, 은행에 가져가면 액면가만큼 금화 또는 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갖고있는 금보다 많은 지폐를 발행하곤 했다. 고객들이 한꺼번에 금으로 바꿔 달라고 할 확률은 낮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금으로 바꿔 달라는 고객들에게 줄 금이 없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불태환 화폐(명목 화폐, fiat currency)가 나왔다. 태환, 즉 금으로 바꿔주지 않는 화폐이다. 20세기에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불태환 화폐로 전환하였다.
흔히 불태환 화폐는 정부의 신뢰로 보증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보증하는 것인가? 화폐를 가져가면 무엇으로 바꾸어 주는 것인가?
답은 ‘아무 것으로도 바꾸어 주지 않는다’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다.
“Federal Reserve notes are not redeemable in gold, silver, or any other commodity.”
(미 연방준비제도 웹사이트)
그래서, 지금 우리가 비트코인에 내재적 가치가 있냐는 논쟁을 하는 것처럼, 종이돈 초기나 불태환화폐로의 전환기에는 이런 종잇장에 불과한 화폐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지금도 금본위 제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가상화폐가 가진 ‘실물로 담보되지 않음’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도 갖고 있다. ‘정부의 신뢰와 신용’이라는 추상적인 뒷받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실물자산으로 바꿔주지 않으므로 화폐는 내재적 가치가 없을까?
실물로 바꿔 주지 않는 화폐의 내재적 가치는 없나?
불태환 화폐라고 했지만, 태환 화폐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금화에서 금이라는 물질을 제외하고 교환수단이라는 속성만 남긴다면 불태환 화폐와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 불태환 화폐 대신 그냥 화폐라고 하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실물로 바꿔주지 않는 화폐라도 내재적 가치는 있다. 화폐의 내재적 가치는 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능에서 나온다.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방법은 그것이 없어졌을 때에 사람들이 아쉬워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화폐가 없다면 어떨까?
계란을 사야한다고 하자. 상점에서 계란을 파는 것은 알지만, 화폐가 없기 때문에 내가 갖고있는 물건을 가져가서 교환해야 한다. 내가 갖고있는 물건 중에 상점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갖고 있는 물건 중에 그 상점이 필요한 것이 없으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상점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가져가도 문제가 또 있다. 내 옷은 계란 10판 정도는 받아야 하는 옷이다. 하지만 나는 계란 1판만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옷을 먼저 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쌀은 필요하기 때문에, 남는 쌀은 집에 가져간다. (여기서 쌀이 자연스럽게 실물화폐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거래를 화폐는 단순하게 해준다. 즉, 화폐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다. 즉, 금으로 바꿔주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사용하면 화폐의 가치는 0이 아니다.
하나만 더. 교환에는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지폐에 10달러라고 쓰여 있건 100달러라고 쓰여 있건,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쓸모가 많아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를 보여준다.
네트워크 외부효과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내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내가 카카오톡을 쓰는 이유는 많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보다 성능이 좋은 메시징 서비스라도, 나 외에 쓰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화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화폐의 내재적 가치가 있음을, 즉 0이 아님을 얘기하였다. 이제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자.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화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나라 전체의 부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또는, 화폐가 없다면 (즉 물물교환을 하거나 실물을 화폐처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GDP가 얼마나 떨어질까? (부는 미래에 창출될 모든 소득의 현재가치로 볼 수 있기에, 이 둘은 결국 비슷한 질문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생산성 하락이나 비용 증가 등 많은 부정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적어도 몇 십%는 떨어지지 않을까?
현대사회가 많은 부를 창출하는 데에는 분업이 큰 역할을 하였다. 분업이란 서로 다른 회사나 개인들이 자기가 잘 하는 일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며, 많은 부분이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거래는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즉, 화폐는 현대사회의 복잡하고도 효율적인 분업을 가능케 하는 핵심 도구이다.
또 다른 방법은 국가 경제가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만 화폐 경제에서 차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모두들 화폐를 사용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물물교환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카메라를 팔고 기타를 사고 싶다. 어떻게 물물교환을 할지를 고민중인데, 정부관리가 와서 이렇게 얘기한다. “카메라를 싸게 팔면 특별히 이번만 화폐를 받고 물건을 살 수 있게 해 주겠다.” 나는 카메라를 얼마나 싸게 팔 의향이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최소한 20%는 깎아주겠다. 여기 저기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보고, 전화나 이메일을 주고받고, 그래서 간신히 카메라를 주고 쌀을 받고, 또다시 쌀을 기타와 바꾸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차라리 20% 싸게 주고 돈으로 받겠다.
그렇게 깎아준 금액이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화폐를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부의 손실, 또는 화폐를 사용할 수 있음으로써 생기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경제전체의 부에서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는 적어도 20%는 될 것 같다.
가상화폐는 기존의 화폐에 비해 경쟁력이 있나?
실물이 아니고 실물로 바꿔 주지도 않는 순수한 화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은 가상화폐도 가치가 0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치가 0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가치가 있지만 사라진 것들로 가득하다. 가상화폐가 시장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서라도 사용되려면, 기존 화폐에 비하여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
이것도 결론부터 말하자. 가상화폐는 기존 화폐보다 분명한 장점들이 있다.
-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거래비용이 낮다
- 거래 완료까지의 시간이 짧다
- 위조가 불가능하다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지금의 금융환경에서는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데, 나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돈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될지 모르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행경비가 더 들 수도 있다. 최소한 하나의 은행, 대개는 보내는 사람의 은행과 받는 사람의 은행, 최소 두개의 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에서는 내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전자지갑에 갖고있는 돈을 상대방의 지갑 주소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마치 이메일처럼 말이다.
거래비용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은행의 송금수수료 등에 비하여 가상화폐의 거래 수수료는 매우 낮다. 심지어 수수료 0을 표방한 것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저는 지금도 은행 송금수수료 0인데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우수 고객이거나, 은행의 마케팅 캠페인이 진행중인 덕분이지 은행의 수수료가 모든 사람에게 0인 채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사람들과 비싼 시스템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도 채굴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이 기존 금융시스템보다 효율적이어서 거래비용이 낮은 것이다.
거래 완료 시간이 짧다는 장점을 소비자는 피부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의 인터넷 뱅킹에서도 내가 송금을 하면 상대방의 계좌에 거의 실시간으로 입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가 보는 앞에서의 현상이고 뒤에서 은행끼리의 정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은 종이돈까지 관련된 일이다.
소비자로서 거래 시간의 짧음을 가장 쉽게 느낄 것은 국제 송금일 것이다. 은행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로 송금하면 지금도 며칠 걸리는데, 비트코인으로는 국내건 국제건 걸리는 시간은 차이가 없다. 대개는 몇 분에서 몇 시간이면 된다.
위조가 불가능한 것은 현금을 점점 덜 쓰는 소비자로서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금융시장 전체로 보면 중요한 장점이다. 최근에도 전철 안에 붙어있는 위조지폐를 신고하라는 광고를 보았다.
가상화폐는 지폐나 동전에 비하여 인터넷 시대에 분명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이제 현실적으로 가장 궁금한 질문인 가상화폐의 적정가격에 대하여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