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위기
현대자동차가 위기라는 보도가 많이 보인다. 진단도 많지만, 타당한 진단들인지는 의문이다.
한 기사에서는 “그동안 수직계열화를 통해 글로벌 업체들의 하드웨어를 더 값싸게 모방하며 성장했지만, IT(정보통신) 등 각종 기술의 융복합이 강조되는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과거 전략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기사는 “기초·선행기술 개발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스템을 구미 대형 부품업체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과거보다 비용이 상승”함을 지적했다.
앞의 기사는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하려는 게 문제라고 하고, 뒤의 기사는 부품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서로 상충한다.
이런 사업모델적인 측면은 내부사정을 몰라서 잘 모르겠지만, 외부에서도 큰 그림은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성장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현대자동차만 보았을 때, 2015년 매출은 43조원, 2015년은 44.4조원, 2016년은 41.7조원이다. 성장은 보이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신흥시장이다. 세계 5위의 시장인 인도에서 17%의 점유율로 2위를 하는 등 신흥시장에서 현대차는 잘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최대의 자동차 시장이자 신흥시장의 대표인 중국에서의 부진, 그리고 좀 더 미래지향적 전략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기차 시장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중국 시장으로 본 자동차 시장의 미래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생각할 때, 최대의 신흥 시장인 중국 시장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 중국은 미국보다 큰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2016년 중국시장 자동차 판매는 2천8백만대였다.
- 중국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은 아직 매우 낮다. 2015년 기준 100 가구에 31% 정도로 보인다. 미국, 한국, 일본은 80% 이상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는 이미 성장이 높지 않다. 올해 성장은 2%도 안 될 것을 예상한다.
- 그렇다면 중국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은 결국 정해진 파이를 놓고 점유율 싸움이다. 가성비 좋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사드 문제가 불거진 2017년 3월 이후엔 점유율 2%대를 보였다. 하지만 그전에도 점유율은 4%대에 불과했다.
- 반면 중국에서 전기차의 성장은 매우 빠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합한 판매량은 2014년 7만5천대, 2015년 33만대, 2016년 50만대 수준이었다.
- 공식적으로 전기차로 분류되지 않는 저속 전기차까지 합하면 더욱 그렇다. 5000불 이하의 가격에 시속 70킬로미터 이하의 최고속도를 가진 소형차인 저속전기차는 2009년에 2만3천대 판매에 불과했지만, CAGR 76.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5년에는 68만8천대가 판매되었다. 2020년에는 2백만대 이상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보다 저가의 대안인 2륜 전기차, 즉 전기 스쿠터의 사용도 활성화되었다. 2004년에 4만대 판매에 불과하였지만, 2010년까지 누적 1억대가 넘게 팔렸고 해마다 2천만대 이상이 팔리게 되었다.
중국 외에 세계 여러나라에 공통적인 현상도 있다.
- 환경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들은 내연기관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있다.
- 우버, 카카오택시 등 IT 기술을 활용하여 택시 사용이 편리해지고 있다.
- 카셰어링 등 차를 빌려 타는 서비스도 편해지고 있다.
- (자동차가 처음 나올 당시에 비하여) 가족이나 단체보다 개인이 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현상을 종합해 볼 때에,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이는 세계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흥시장에서조차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장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 자동차나 가성비 좋고 실용적인 개인 이동수단은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고,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이렇게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중국의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이제 시작하는 정도다.
현대자동차는 전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 중에서 전기차 판매 3위라며 자조하고 있지만, 그 외의 자동차 회사와 전기차 전문 업체를 포함하면 11위다.
한마디로 현대차는 별로 성장하지 못하는 현재 시장에서만 어렵게 싸우고 있고, 미래 시장에서는 취약하다.
테슬라의 고민
한편 미국의 테슬라도 문제가 많다. 전기자동차 시장의 상징과 같은 브랜드가 되었지만, 수천억원의 적자를 계속 내면서도 GM보다 높아진 시가총액을 정당화하려면 빨리 거품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전기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무적으로도 개선해야 한다.
테슬라는 이미 마케팅에선 유래없을 정도로 성공적이다. 전세계 회사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 애플의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소비자들처럼, 테슬라의 자동차는 예약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쩌면 아이폰 예약구매 현상보다 더 놀랍다. 애플은 검증된 회사지만, 테슬라는 아직 스타트업 티를 못 벗어난 회사 아닌가?
남들이 부러워할 마케팅 성공을 진짜 실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당면한 핵심 과제는 대량생산이다. 소비자들에게 약속한 멋진 전기자동차를 늦지 않게 인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여기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델3는 테슬라 CEO인 엘런 머스크가 전기자동차의 모델 T로 만들고 싶어하는 모델이다. 전기자동차를 대중화하겠다는 야심을 담은 모델인 것이다. 비용효율적인 대량생산은 당연히 핵심적인 과제이다.
2016년 3월 발표후 45만대 이상을 예약판매한 모델3이 정상적으로 고객에게 인도될지는 아직 불안한 모습이다. 2017년말부터 인도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아직 30대밖에 인도하지 못하였다.
테슬라의 캘리포니아 프레먼트 공장은 원래 GM과 토요타의 합작으로 1984년에 세워진 누미(NUMMI) 공장이었다. 낮은 비용과 높은 품질을 동시에 달성하는 토요타의 대량생산 노하우인 린생산을 배우기 위하여 GM이 요청한 제휴의 결과였던 공장이다.
누미 공장은 1985년에는 2470명의 직원이 64,764대의 차를 생산했다. 인당 26대였다. 하지만 1997년에는 4844명이 357,809대를 생산했다. 인당 74대였다.
테슬라는 2016년에 6천명에서 1만명 사이의 직원들이 83,922대를 만들었다. 인당 8대에서 14대 정도를 만든 것이다. 누미 공장의 초기 생산성, 즉 토요타에 한 수 배워야 했던 GM의 생산성보다도 절반 내지 3분의 1밖에 안 되는 생산성이다.
게다가 각종 품질 문제로 인한 고객들의 불평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손지창씨처럼 전자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핸들 동작에 문제가 생기거나 창문이 안 닫기는 등의 기계적인 문제도 보고되고 있다.
현대와 테슬라의 협력
이렇게 현대자동차나 테슬라는 모두 각자의 문제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를 만드는 기본 실력은 있지만, 브랜드와 가성비에서 어중간한 상태이고 미래 시장인 전기자동차에서 뒤져 있다. 테슬라는 전기자동차 시장을 개척하는 회사로서,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의 브랜드를 만들었으나, 제품을 양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가 테슬라 자동차의 생산을 맡으면 어떨까? 폭스콘이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듯이.
현대차가 테슬라의 미국 공장을 위탁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에게는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만, 소프트웨어 중심의 핵심역량과 문화를 가진 테슬라에게는 대량생산은 물론이고, 공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가 아예 공장을 맡아주는 것을 반길 가능성이 높다. 공장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아예 인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실무적인 구조는 양사가 전략적 공감대만 형성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현대차는 자체 브랜드는 아니지만 전기차 시장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향후 현대차의 전기차 품질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브랜드 이미지의 상승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테슬라 자동차의 수요는 현대차의 전기차 수요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전기차 생산에 대하여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어느 산업이나 초기에는 러닝커브가 크게 작용하며, 전기차도 많이 만들어 보아서 경험을 많이 쌓은 회사가 기술이나 생산성에서 경쟁력을 더 갖게 될 것이다.
테슬라는 골치거리인 대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대차는 연간 8백만대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테슬라가 어려워하는 제조 문제들은 현대차에겐 비교적 쉬운, 상당수는 이미 경험해본 문제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와 일부 고유한 부품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대량생산 문제를 해결한 테슬라는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고, 향후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면서도 생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AS에서도 현대차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훨씬 좋은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현대자동차나 테슬라가 어떤 전략적 생각을 하고있는지, 또는 둘 사이에 어떤 구도가 이미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두 회사의 협력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디어를 공유한 것뿐이다.
혹시 현대자동차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고려해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