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시작한 브루스 헨더슨은 사업을 빨리 키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더 디 리틀(Arthur D. Little)에서 밀려나온 48세의 중년이었고, 옛 고객사의 지원을 받았지만 혼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짧은 인쇄물에 경영에 대한 관점을 담아서 잠재 고객들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적중하였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단위 생산비용이 낮아진다는) 경험곡선과 (Star, Dog, Cash Cow, Question Mark로 유명한) 포트폴리오 매트릭스 등의 히트 ‘작품’들은 BCG가 전략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든 혁신자로서 큰 회사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글들은 BCG Perspective라고 불리게 됩니다.
지식을 마케팅에 이용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초에 활동한 ‘과학적 관리’의 프레데릭 테일러도 그의 이론을 책으로 써서 유명해졌습니다.
BCG와 테일러는 둘 다 자신이 만든 지식을 마케팅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실제 컨설팅에 지식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신이 만든 지식은 곧 BCG와 테일러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컨설팅 방법론이자 마케팅 콘텐트였습니다. (차이도 있었습니다. 테일러는 그 지식으로 컨설팅을 사실상 혼자서 수행하였습니다. BCG는 그 지식을 컨설턴트들에게 교육하였고, 그 결과 그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컨설턴트들을 많이 양성하였습니다. 그렇기에 BCG는 큰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느껴집니다. (인쇄물로 나누어주던 것을 현대에 맞게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한) BCG Persective 사이트에서 ‘Chris Anderson on Why Community-Driven Companies Will Always Win‘이라는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 앤더슨은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의 책을 번역하고, 함께 팔린 ‘한국기업의 롱테일 전략’이라는 짧은 책도 쓴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3D 프린팅에 관심이 많아서 3D 로보틱스라는 회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크리스 앤더슨이 BCG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회사에 다닌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CG는 그의 인터뷰를 회사의 지식을 알리는 사이트에 크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맥킨지도 비슷합니다. 느낌으로는 BCG 이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맥킨지도 McKinsey Quarterly라는 발행물을 통하여 자사의 관점을 알려왔지만, 최근 맥킨지 웹사이트에는 직업적인 성공에 대한 책을 쓴 와튼스쿨 교수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습니다.
BCG나 맥킨지는 왜 이렇게 회사 밖 사람들의 지식을 홍보하는 것일까요?
고객들이 원하는 지식의 종류가 많아져서, 내부에서 그 모든 지식을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롭고 인기있는 지식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유행의 사이클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reshoring 등 쉴새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컨설팅 회사도 이 모든 것의 전문가를 내부에 갖기는 어렵고, 외부 저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지식이라도 고객이 원하는데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를 인정함으로써 차선을 취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 인터넷이라는 주제의 저자는 아니지만, 가장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알고 그에게 수준높은 질문을 할 정도로 그 주제를 잘 알고 있다”라고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문으로 참여시키는 현실적인 협력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객이 아니라 내부 컨설턴트들에게 지적인 만족을 주는 추가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신입 컨설턴트들에게 내 직장이 오래되고 경직된 곳이 아니라 최신의 현상도 다루는 곳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고객이 관련 주제를 꺼냈을 때 한마디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지식을 주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정당화하면 당연한 변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아직 답도 가설도 없고 질문도 산만하지만, 생각의 출발점은 될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 다른 사람의 지식을 이용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면, 컨설팅 회사는 무엇으로 차별화 하는 것일까요? 그 지식을 더 잘 적용하는 것? (물론 한 때 리엔지니어링이나 BSC 붐을 보면 이미 그래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를 대표하는 관점이 없다면, 과연 각 컨설팅 회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컨설팅 회사가 지식의 개발자가 아니라 큐레이터, 포탈로 변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 필요한 지식의 종류가 많아진다면, 그 모든 지식을 컨설팅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론화 하기 어렵고 소속 컨설턴트들에게 그 때마다 교육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소수의 지식으로 훈련된 많은 컨설턴트를 양성함으로써 큰 조직을 이룬 대형 컨설팅 회사의 전통적인 사업모델과 잘 맞을 수 있을까요?
– (앞의 질문들과 반대로) 유행하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컨설팅 회사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일까요? 브루스 핸더슨이 경험곡선이나 포트폴리오 매트릭스를 만들었을 때, 그는 이것이 유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전략의 근본원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이론이 불변의 금과옥조인지는 이견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진실을 찾았던 구도자적인 모습은 존경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BCG를 비롯한 큰 컨설팅 회사들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식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지식이 유행할 때 때를 놓치지 않고 많은 일감을 얻는 방식이 컨설팅 회사를 유지할 유일한 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