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 효과 – 아담스미스의 핀공장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의 첫장은 분업에 대한 것이다. 그는 분업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하여 핀공장을 예로 들고 있다. 먼저 그는 핀공장의 모습을 묘사한다.
한 사람은 철사를 뽑아내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곧게 펴고, 세번째 사람은 자르고, 네번째 사람은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번째 사람은 위쪽을 갈아서 머리를 붙일 수 있게 한다. 머리를 만드는 것은 두, 세개의 서로 다른 작업이다. 붙이는 것도 별개의 일이고, 핀을 희게 하는 것도 또다른 일이다. 종이에 싸는 것 자체도 하나의 작업이다. 핀을 만드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해서, 약 18개의 개별 작업으로 나누어진다.
— 아담스미스, 국부론
그리고는 분업의 효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나는 열명의 사람들이 일하는 이런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다… 그 열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하루에 약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개별적, 독립적으로 일했다면… 그들은 각자 하루에 20개도, 어쩌면 1개도,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 아담 스미스, 국부론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아담 스미스의 핀공장에는 첨단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각 공정에 필요한 도구와 기계 장치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공장처럼 자동화된 설비도 아니었고, 전기는 물론이고, 증기기관도 아직 활용되지 않았다. 철기시대적인 도구와 기계들과 사람의 힘만을 사용한 공장이었다.
물리적 기술, 조직적 기술
인류역사에 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18세기말에 시작하였다. 보통 1760-1780년 경을 산업혁명의 태동기로 보고 있다. 아담스미스는 1723년에 나서 1790년에 사망하였고, 국부론을 완성한 것은 1776년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이 막 시작할 때에 국부론을 썼다고 하겠다.
그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머리속에 간직한 핵심 이미지는 ‘기술’일 것이다. 증기기관, 자동차, 전기 등.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있고, 그러한 기술을 통하여 높은 생산성으로 산업이 발전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담스미스의 공장은, 대단한 기술이 없이도 분업 만으로도 엄청난 생산성의 증가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분업은 어떻게 만드나?
아무렇게나 일을 나누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인지, 누군가 관찰과 연구를 통하여 만들어야 한다. 업무 프로세스 설계와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그 일부분일 뿐이다. 먼저 일을 나누고, 누가 그 일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회사 내에서 할지, 외부에서 살지도 결정해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에는 분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일을 두사람 이상이 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가장 일상적인 예가, 큰 교자상을 옮길 때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분업은 아니지만,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이다. 합업이라고 해야 할까?
분업이나 합업 등만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일을 하는 경우에도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잊지 않기 위하여 목록을 활용하거나, 시간 배분을 적절히 하는 등 일을 조직화해서 개인의 생산성도 올릴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조직적 기술, 영어로는 organizational technology라고 부르면 적당할 것 같다. 여기서 조직이란 하나의 기업, 하나의 단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조직한다는 뜻이다. 아담 스미스가 핀공장을 예로 든 것은 그것이 단순해서였지, 조직내의 분업만을 분업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시장에서의 분업, 서로 다른 기업들끼리 거래를 통해서 일어나는 분업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사회적 기술, social technology도 괜찮은 표현인데, 개인의 일을 제외하는 느낌이 있다.
말의 홍수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말을 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아직 여기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좁은 의미의 기술을 이와 대비해서 부를 때는 물리적 기술, 영어로 physical technology, 또는 자연과학적 기술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물론 평소에는 그저 기술이라고만 해도 좁은 의미의 기술을 지칭할 것이다.
때로는 물리적 기술과 조직적 기술의 구분이 애매할 때가 있다. 인터넷 서비스들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분명 물리적 기술을 기반으로 한 회사들이다. 인터넷 망을 통하여 디지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술에서 자연과학적 (또는 좀 더 눈을 낮추어서 응용공학적 의미에서라도) 의미에서 새롭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은 아담 스미스의 핀공장과 유사하다. 이미 존재하는 도구, 기계들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데에 잘 사용한 것이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대량생산 혁명도 사실 기술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용된 물리적 기술인 컨베이어 벨트는 그 시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었다. 다만 그는 움직이는 벨트를 이용하여 일을 새롭게 조직화했을 뿐이다.
생산성의 증가, 이를 이룬 기업의 성공, 이를 통한 문명과 경제의 발전에는 물리적 기술뿐 아니라, 조직적 기술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직적 기술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누가 이런 조직적 기술을 만드는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아마도 창업 기업가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 또는 새로운 컨텐트를 만드는 스타트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대부분 새로운 조직적 기술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궤도에 오른 기업의 리더들도 시장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조직적 기술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리적 기술을 만드는 사람을 기술자, 엔지니어라고 부르듯이, 이 사람들은 조직적 기술자, organizational engineer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업의 리더들이 뭔가 깔끔하게 정의가 안 되어서 “내가 하는 일이 뭐지?”라고 스스로 묻는다면, ‘조직적 기술의 개발’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일을 잘 조직하는 것은 고객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공급자에게도 좋다. 한국이 노동 생산성이 낮다고 하는데, 특히 비제조업 분야가 그렇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 추측하자면 화이트칼라 생산성이 낮을 것으로 생각한다. 잘 조직된 일은 생산성도 높고, 일을 하는 주체들에게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물리적 기술 이상으로 조직적 기술의 혁신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