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봄 여름에 필자는 ‘한국기업의 롱테일 전략’이라는 짧은 책을 썼는데, 이를 위하여 여러 시장을 조사하다가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옷이 온라인 쇼핑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카테고리라는 것이었다. 온라인쇼핑 초기에는 컴퓨터나 전자제품보다 훨씬 적은 비중밖에 안 되던 옷이 해가 갈수록 급성장하더니 2006년에는 그들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가장 빨리 성장하는 유통 시장인 온라인 쇼핑에서 그 이후로도 옷은 지속적으로 1위 카테고리의 자리를 유지하였다. 계속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 카테고리별 비중 추이]
2006년에 온라인 의류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옷도 인터넷에서 상당히 거래가 되고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위 카테고리일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닷컴붐의 절정기이던 1999-2000년에 어떤 산업에 전자상거래가 먼저 성장할 것인가는 주요한 관심사였는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우선순위로 꼽은 것은 컴퓨터, 가전제품, 책 등이었다.
컴퓨터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많이 쓰는 품목이기 때문에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하였고, 가전제품도 직접 안 봐도 규격과 성능 등 스펙만 확인하고도 살 수 있는 표준화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인터넷 상거래에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비슷한 이유로 자동차에서도 전자상거래에 긍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옷이 온라인 거래가 많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듣거나 본 기억이 없다. 미국에서라면 그나마 카탈로그를 우편으로 배달하고 전화로 주문하는 우편주문(Mail Order) 모델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옷을 직접 보고 만지고 입어보고 사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미국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도 의류가 전자상거래 시대의 선도 카테고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분명히 2006년에 옷은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품목이 되고 있었다. 누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었을까?
한가지는 오픈마켓의 부상이었다. 오픈마켓은 지마켓, 옥션 등 회원과 회원의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를 말한다. 업계에서 일반몰이라고 부르는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은 전통적인 소매업으로서, 해당 사이트가 구매한 제품을 방문자에게 판매하는 형태이다. 원래 오프라인 소매 사업을 하던 기업이나 TV 홈쇼핑을 하는 업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주류다.
오픈마켓은 후발주자로서 훨씬 빠르게 성장하며 비중을 늘렸다. 2003년에 일반몰이 약 5조8천억원을 판매할 때, 오픈마켓은 불과 7천800억원을 판매했다. 약 8분의 1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2006년에는 일반몰의 60%에 가까워졌고, 2010년에는 84% 규모가 되었다.
[온라인 쇼핑에서 일반몰과 오픈마켓의 비중]
일반몰에서 물건을 살 때와 오픈마켓에서 살 때에 소비자가 겪는 프로세스는 동일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다. 일반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일반몰의 물건을 사는 것이지만, 오픈마켓에서 사는 것은 오픈마켓에 입점한 판매자의 물건을 사는 것이다. 개별 주문을 처리하는 것은 판매자의 몫이고, 지마켓은 판매자에게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온라인 장터를 제공할 뿐이다.
2006년 당시 필자는 분석을 위하여 오픈마켓 회사에 제품의 카테고리별 종류를 요청했었는데, 그들은 그런 식으로 데이터를 집계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이 오픈마켓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픈마켓은 물건 하나 하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입점한 회원을 관리하는 사업모델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픈마켓의 빠른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큰 기업들이 아니라 지마켓이나 옥션에 입점한 군소 의류업체들의 판매가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 옷에서, 게다가 군소업체들의 옷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지마켓의 경험이 그 변화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처음엔 지마켓도 의류를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 지마켓은 구스닥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인터파크의 팀으로 출발하였다. 당시 인터파크 내부적으로 기존 전자상거래 모델, 즉 일반몰 모델로는 한계가 있으니 쇼핑몰을 주식시장처럼 바꾸는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었다. 미국의 이베이와 프라이스라인을 참고하여 경매와 역경매를 합한 모델로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설은 컴퓨터나 전자제품의 경우 표준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 고객을 상대로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는 입찰에 참여를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판매업체들이 입찰을 하지 않았다. 사업모델의 기본전제가 어긋난 것이다. 추측컨데, 이미 가격경쟁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었던 컴퓨터 쇼핑몰들은 많은 마진을 붙이고 판매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경쟁의 여지가 많지 않았고, 표준화된 상품이기 때문에 서로 뻔히 어느 정도의 원가인지 아는 상황에서 출혈 입찰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컴퓨터 쇼핑몰은 고전적 완전경쟁에 가까운 모델인 것이다.
계속 악전고투하던 구스닥은 2003년 가을 대변화를 시도한다. 하나는 기존의 사업모델을 포기하고 지마켓이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시작한 것이다. 경매, 역경매가 아니라 판매업체가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에 자유롭게 가격을 붙이는 오픈마켓 모델이었다. 또 한가지 변화는 경쟁사 옥션이 개인간 경매를 대상으로 한데 비해, 지마켓은 전문업체를 판매업자로 한다는 타깃 시장의 차이였다. 남는 물건 처분하는 니즈가 아니라 돈을 버는 니즈를 목표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지마켓은 옷과의 만남으로 결정적인 성공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구영배 사장은 TV 홈쇼핑에서 옷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시험 삼아 옷을 올려보았는데, 2003년말 옷 거래가 하루 3000건을 넘어섰다는 놀라운 보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지마켓은 기존 온라인 쇼핑몰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사업모델을 몰고 갔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의류는 그때까지 주목 받지 못한 분야였다. 옥션이나 인터파크는 여전히 컴퓨터나 가전제품에 집중하고 있었다. 옷을 파는 경우에도 대형 의류회사만을 취급하였다. 옷을 입어보지 않고 사면 반품이 많을 것으로 보고, 품질 관리에서 믿을 수 있는 유명 브랜드만 취급한 것이다. 하지만 구영배 사장은 동대문 군소 업체들을 떠올렸고, 그들을 입점시키는 노력을 시작한다. 소비자들은 홈쇼핑에서 의류를 구입한 경험이 있어서 의외로 거부감이 없었고, 1-2만원대의 저가 옷들이어서 부담 없이 구매가 이루어졌다. 무료 반품 등 온라인 구매를 두려워하는 소비자를 안심시키려는 업체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작용하였다.
사이트의 시스템도 다양한 옷을 검색하고 구경하면서 쇼핑하는데 맞게 고쳐갔다. 한번 보았던 옷을 쉽게 다시 찾을 수 있는 기능, 스타일과 가격에 따라서 검색할 수 있는 기능 등을 개선해 나갔다. 남성들은 잘 상상이 안 되겠지만,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옷 쇼핑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면 이게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온라인 옷 쇼핑몰에서 옷을 구경할 때 빠른 시간에 수많은 옷들을 구경한다.
그리하여, 오픈마켓과 동대문 옷을 중심으로 지마켓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2004년말 하루 거래건수 1만건에서 2005년 중반에는 하루 거래건수 60만건을 돌파하고 연간 1조원의 거래액을 달성하면서 그때까지 1위던 옥션을 넘어서 최대의 오픈마켓이 되었다. 그리고 지마켓 거래액중 40%가 의류였다.
작은 의류업체들의 성장은 오픈마켓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픈마켓 밖에서 자신의 웹사이트를 열어서 판매를 하는 임대형 쇼핑몰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임대형 쇼핑몰은 업계에서 소호몰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개 1-2명이 창업한 작은 업체였다. 그들은 대부분 메이크샵, 카페24 등 쇼핑몰 전문 호스팅 업체의 쇼핑몰 사이트 제작 및 운영도구를 활용한다. 사실 오픈마켓의 판매자와 임대몰 운영자는 많이 겹친다. 더 많은 노출을 위하여 오픈마켓과 임대형 자체 사이트를 동시에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임대형 쇼핑몰들은 전자상거래 초기엔 아예 보이지도 않던 미미한 존재였다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앞에서 본 (오픈마켓을 제외한) 일반몰 시장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 그들 중에서 성공한 업체들이 나오면서 뛰어드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동대문 패션협회에 의하면, 동대문과 거래하는 온라인 상인의 숫자는 2001년 500개에서 2006년 40,000개로 급증하였다.
[동대문과 거래하는 온라인 상인]
정확한 데이터는 알기 어렵지만, 이 생태계에서 거래되는 옷의 다양성은 매우 다양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대화를 나눈 온라인 쇼핑몰 업계 관계자의 추측으로는, (물론 매우 편차가 크겠지만) 업체마다 한 시점에 평균 100종 정도의 옷은 판매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업체가 4만 곳이 있으면 4백만 종이다. 그 중에 (같은 옷을 도매에서 사오기 때문에) 4분의 3이 겹친다고 해도 1백만 종이다. 엄청난 다양성이 몇몇 대기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업체에 의해서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쇼핑몰들은 대형 의류업체에 대하여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선 고객의 변화를 빨리 포착하여 상품을 내놓는 순발력이 뛰어났다. 철마다 콜렉션이 변하는 대형 의류업체들에 비하여 온라인 쇼핑몰들은 소비자들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구색을 바꾸었다.
또한 저렴한 옷을 주로 취급하다 보니 세밀한 품질보다는 예쁘고 감각적인 옷을 찾는 고객들이 많았는데, 쇼핑몰 주인 자신이 고객과 같은 세대인 경우가 많아서 취향을 잘 맞출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이 고객이 좋아하는 옷이었던 것이다.
끝으로 근본적인 이유는 쇼핑몰 사장의 스타일 감각이었다. 단순히 동대문 옷을 가져다 파는 것이었다면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옷의 종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한 도매상에서 몇 군데의 쇼핑몰이 같은 옷을 사가는 경우는 자주 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면 여러 쇼핑몰에 비슷한 옷들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핑몰에서 어떻게 모델에게 코디를 해서 입히느냐에 따라 옷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인기 쇼핑몰들은 상당한 충성고객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쇼핑몰 사장의 옷 입는 감각을 따라가는 것이다. 온라인 소호 쇼핑몰은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옷 입는 감각을 파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Mass Customization 이론처럼 고객의 주문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라는 지적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