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가 아닌 인터넷과 전화로 판매하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은 우리나라에서 2001년에 처음으로 생겨서, 이후 빠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오프라인 자동차보험과 맞먹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출범 후 2005년에 시장에서 10프로의 점유율을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성과였지만,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회사들은 왜 더 빠르지 않을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한가지 원인은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이 오프라인 보험에 비하여 보상처리를 잘 하지 못한다고 고객들이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도 오프라인 보험과 똑같이 사고가 나면 보상처리 조직이 출동하였지만,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보상직원이 직접 출동하지 않고 원격으로만 처리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까지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지레 짐작했을 수도 있고, 오프라인 보험사들이 그런 인식을 부추겼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문제는 소비자들이 다이렉트 보험사들의 보상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보험사들에 비하여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회사들은 그 인식을 확실하게 바꾸지 못하였습니다. 다이렉트 보험의 원래 강점인 낮은 가격 또는 다른 소비자 혜택의 마케팅에만 계속 집중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잘못된 인식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업계 1위 회사인 삼성화재가 2009년에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애니카다이렉트라는 브랜드로 출시한 이 사업의 마케팅 슬로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터넷이라 저렴한 보험료에 보상서비스는 삼성화재 그대로”
이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화재의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다이렉트 보험과 달리 삼성화재는 전화 채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인터넷만으로 가입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격을 기존 다이렉트 보험들보다 더 낮출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소비자들이 다이렉트보험의 보상서비스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삼성화재의 기존 보상서비스와 같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의 다이렉트 보상은 오프라인 보상과 같다. 게다가 보상서비스의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는 삼성화재다.”
이러한 전략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가장 늦게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화재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5년만에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놀라운 성과입니다.
이 사례의 한가지 교훈은 시장에서 인식은 곧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Perception is reality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오프라인 자동차 보험과 다이렉트 보험의 보상 서비스에는 근본적 차이가 없었지만, 소비자들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이렉트 보험 회사들이 이런 인식을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인식이 맞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는 다이렉트 보험 성장에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후발주자인 삼성화재에게는 기회가 되었고, 우수한 보상서비스를 강조한 마케팅은 가장 늦게 시작한 삼성화재의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이 단기간에 1위가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진출에서도 인식을 바꾸는 것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시장에 처음 수출한 현대자동차 제품은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일회용 차’, ‘붙어있는 건 다 떨어지는 차’ 같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번 생긴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말에 현대자동차는 품질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이 생겼다고 자부하였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머리에 자리잡은 좋지 않은 브랜드 이미지는 여전하였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하여 1999년 정몽구 회장은 10년 10만 마일 보증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에서 그때까지 일반적인 자동차 보증은 3년 또는 3만6천마일까지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이의 세배가 넘는 기간을 보증한 것입니다. 가히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내부적으로 품질을 더욱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현대자동차가 저렇게 장기간 보증을 하겠다는 것을 보니, 품질에 자신이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고, 2008년에는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많은 비판을 들은 전략이었습니다. 사내에서는 그러다가 보상수리를 요청하는 차가 많아지면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외부에서도 현대자동차가 과연 이런 전략을 지속할 수 있을지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자충수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 10만마일 보증수리는 현대자동차의 인지도를 올리고, 이것이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지켜지는 약속임을 확인하면서 소비자들의 현대차에 대한 인식은 급격히 개선되었습니다. 품질에 대한 낮은 신뢰가 극복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잘못된 고객의 인식을 그냥 놔두면 두고두고 문제가 됩니다. 고객의 인식은 시장에서는 곧 현실입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를 바꾸려면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과 이를 뒷받침할 실제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시장에서의 인식은 곧 현실입니다.